몽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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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
  • 2016.10.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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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역사
 
사실 몽골(Mongol)은 원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였으나, 징기스칸이 지닌 특별한 카리스마(Charisma)로 인해 오늘날엔 전체 몽골인 과 몽골어를 지칭하는 표현이 되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비하(卑下)하기 위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사용한데서 비롯 되었다고 하는데 이처럼 민족간의 갈등과 경쟁은 결국 상대 민족을 비하 시키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아직도 한자로는 몽고(蒙古)라고 표기 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 엄연히 몽골리아의 공식 국가명칭이 MONGOLIA 이고 민족이나 민족어를 지칭할 때 MONGOL 이라고 표기 함으로 우리는 몽골국 또는 몽골인, 몽골어 등으로 지칭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보인다.
몽골의 역사는 역시, 정복자 칭기스칸 과 함께 시작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초기 몽골족 가운데는 몽골계 외에도 투르크나 탕구드계(西夏)등 여러 언어 집단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13 C 초 테무진이 칭기스 칸에 추대되고 몽골제국을 창건하면서 세계무대에 인식된 [칭기스칸]과[몽골]이 갖는 두단어의 카리스마(Charisma)로 인해 그들 소수부족 각자의 언어와 의식 모두는 철저히 몽골에 동화되고 만다. 이렇다보니 오늘날 몽골족 대부분이 칭기스칸을 자신들의 시조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 일 것이다.
이렇게 주류를 이룬 몽골과 소수부족들이 어우러져 형성된 몽골은 칭기스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원(元)왕조를 세우면서 드디어 국가형태를 갖게되는데, 원(元)왕조 [1271 ~ 1368 ]는 원(元)의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재위 1330-1370:元 순제)-를 끝으로1368년 주원장(홍무제)의 명(明)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후 몽골은 지금의 고비사막지역으로 쫓겨나 13세기의 화려한 모습을 숨긴채 북원(北元)이라는 고립 국가로 남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1377년까지 고려는 북원과 부분적으로 무역거래를 했던 것으로 보임)
이후 1616년 누르하치에 의해 건국된 후금은 1636년 국명을 청(淸)으로 바꾸고, 내몽고지역에 대한 복속을 완료하며,1644년 중원을 제패함으로 결국 몽골은 만주계 청(淸)왕조의 속국이 되고 만다.
이처럼 몽골에게 17C는 몽골족이 러시아와 중국 두 강대국에 병합되는 시기라 볼수있는데, 바이칼호 주변의 부리야트 몽골족은 러시아제국에 병합되고, 내.외몽골은 청조의 영토에 편입되게 된다.
그리고 이때 남.북 몽골의 청조 편입 시기의 차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내몽골(남몽골)과 외몽골(북몽골)이 구분되어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게된다.
청(淸)의 속국이 된 몽골인들은 결국 황폐한 초원 지대로 밀려나 오늘날과 같은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갖게 되는데 , 1911년 청(淸)조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탄생 속에 몽골은 가장 영향력있는 활불인 제 8대 젭춘 담바 호탁트를 국가수반(보그드 칸)에 추대하면서 독립을 선언한다. (이때 내몽고 지역의 활동가들이 합류했고, 몽골족의 통합을 위해 내몽고지역에도 군대가 파견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민족통합운동은 러시아와 중화민국의 간섭으로 실패한다)
하지만 몽골이 독립을 선언한 외몽골 지역이 원래 중국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중화민국이 침공해 들어오자 결국 몽골(외몽고)은 독립을 취하하고, 1915년 몽골. 중국. 러시아의 캬흐타 조약으로 중화민국의 자치구로 전락하게 된다. 더욱이 1917년 러시아의 혁명으로 몽골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두 강대국의 균형이 깨지자 1919년 중화민국은 몽골왕공들을 협박하여 몽골의 자치지위마저 -자발적으로-반납하게 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반혁명 (白軍)세력이 러시아 본토에서 혁명세력에 패주난입해 몽골지역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중에 1920년 몽골지역으로 들어온 반혁명 (白軍)세력 운게른 남작은 몽골인의 反漢감정을 이용하여 1921년 수도 후레(울란바타르)지역의 중국군을 러시아 국경 캬흐타로 몰아내고, 라마교의 활불(달라이 라마)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세워 외몽고에 일시적인 독재자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를 되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몽골인들은 러시아 혁명군의 원조를 받아 중국군과 활불 정부군을 맞서 열심히 투쟁하고 결국 1921년 수도 후레(現-울란바타르)를 점령하게 되는데, 몽골은 활불 정부군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은 <7월 11일>을 지금도 독립 기념일로 기념한다.
이렇게 몽골 해방군에 의해 성립된 몽골정부는 다시 제8대 젭춘담바 호탁트를 국가수반으로 하게 되고, 정부 내각수반 갖추게 된는데 이때까진 특별히 사회주의 색채를 띄지는 않았지만, 1924년 접춘담바의 사망이후 조금씩 사회주의 색채가 나타나서 결국 1924년 11월 몽골 인민공화국(인민당-인민혁명당)의 완전한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세계에서 2번째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한편 내몽골 지역은 일본군이 1930년대를 거쳐, 2차대전 패전 전까지 내몽골을 장악 하고있었지만 계속되는 게릴라전쟁으로 인해실질적 지배권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그런중에 당시 대장정을 마치고 섬서성 연안에 머무르고있던 모택동은 일본의 점령지 내몽골에 대해서 자치구로 인정할 것을 약속하게되고, 결국 1947년 5월 1일 내몽골은 중국에서 첫 번째 자치구가 된다.
몽골국(외몽골)지역은 당시 사회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중국정부도 외몽골 지역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고,이렇게 됨으로 오늘날과 같은 외몽골(몽골공화국) 과 내몽골(중국 자치구)의 형태를 갖게 된다. 외몽골(몽골국)이 1961년에 유엔(UN)에 공식가입하고, 1964년 중~몽 국경이 확정되어지자 내 외몽골의 분열이 고착되었다.
실제로 숫자상 몽골족(Mongolian)들은 몽골 독립국-외몽골(몽골국)-보다 내몽골 지역에 더 많이 살고 있지만, 오늘날 이들(내몽골인)의 독립의지 또는 외몽골인(몽골국)의 통일의지는 몽골지기 개인생각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한민족 南.北韓간의 통일과 몽골족 中.蒙간의 통일은 닮은 듯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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