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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국 선교사 소식

  • 관리자
  • 조회 7191
  • 우간다
  • 2016.10.12
오늘은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비몽사몽간에 뇌를 자극합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잦아드는 곳에는  분명코 기대치가 천국이어야 했었습니다.   주변상황이 아무리 우겨쌈을 당한다 할지라도 감사하는 삶에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든게로구나.   그곳이 바로 천국과 같은 곳이로구나.   짦은 47일간의 한국 방문으로 주님은 너무나 많은 일들을 느끼고 보고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도록 하셔셔 감사가 솟구치게 하셨습니다.
교통사고를 만나 10여개월간 식물인간처럼 재활치료를 받던 한 중년은 보상금의 십일조를 아프리카로 보냈습니다.   그 헌금으로 초등학교 부지를 구입하였으나  사기를 당하여 학교를 짓지도 못하고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 부지는 우간다 장로교회 소관으로 이관되어 있어 언젠가는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봅니다.
부동산을 처분하여 십일조를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교실이 되기를 열망하신 고희의 장로님의 뜻을 따라서 교실 네 칸이 세워졌으며, 교사들 기숙사 방 8개짜리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한 학기를 남겨두고 KAIST에 다니는 동생과 아프리카를 경험하고자 찾아와서는 벽에다 세계지도를 가는 날까지 그리고 간 남매를 기억합니다.  사고싶은 기념품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접고서 떠나는 날 450불을 선교사에게 건넨 그 마음을 기려서 남자 기숙사에 태양열 전기를 넣을 수 있었습니다.  남산 국악당으로 <아리랑:흩어진 사람들 II>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자매님께 잊지 못할 추억을 감사드립니다.
잘 나가던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자신은 은퇴를 선언하고 선교지 우간다에서 노동판  십장이 되신 전 회장 장로님의 수고로 전기가 들어오고 교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 헌금 전액을 우간다 중고등학교를 위하여 써 달라고 한 서울의 모 교회의 지원으로 중고등학교 부지를 사고 측량을 하여 등기를 신청하였으나 아직도 7년간 서류가 잠자고 있습니다.
한 젊은 선교사 부부의 시신을 아프리카 땅에 묻어야 했던 비통의 아픔을 186평의 채플실을 지어 우간다 미래를 밝힐 아이들에게 영적 자산을 심고자하신 서울 청와대 앞의 한 교회는 7년간의 긴긴 세월을 기다리며 선교사역을 묵묵히 이루어내어 작년 6월 6일 헌당식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체 장애아를 가진 부모님의 숭고한 뜻으로 아들의 돐잔치를 아프리카 채플실 헌당식을 위하여 드려지는 아름다운 마음을 띄워보내는 교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을 실천하여 플라스틱 의자도 500여개를 보내시더니 이번에는 학교버스를 구입하는데 보내는 비용이라도 부담하시겠다는 이름을 밝히기를 싫어하시는 여성도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조용히 날아왔습니다.  
대전의 한 교회에서는 영아부 아이들이 보내온 양말을 가져와 동네 아이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나눠주고 성가대는 한 개씩 더 주었더니 나도 성가대를 할 걸 하는 후회감이 보였습니다. 덧붙여서 의약품은 모두  유통기한을 넘긴 것들이어서 가져올 수없었으며 사랑의 마음만이라도 듬뿍 담아왔습니다.
가는데마다 넘치게 부으시는 성령님의 메시지는 교회를 회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바랄 뿐입니다.
건강검진을 받고 생체 나이가 주민등록상의 나이보다 젊게 나와 기분좋게 정상 판정을 받아서 다시 선교지로 돌아올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한 신학생의 학비를 부담하고 한 목사님의 생계비를 조금 보조하고 부모님들에게 용돈을 조금 드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치아 다섯개 덮어 씌우고, 아내는 안경을 새로 맞춰서 폼을 좀 잡아보고, 김선교사 임플란트 하나 하고 임시 치아를 달고 우간다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비용을 주안에서 형제 자매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지인들이 계셔서 이루어지게 된 일임을 주님께 보고드리면서 여기에 이렇게 적어드립니다.
한 선배는 밧데리 재생기계를 기증하였습니다.
학교 기숙사와 중고등학교 건축에 쓰여질 장비들을 구입하였으나 저희들 두사람이 가져올 수 있는 무게 제한 때문에 서울에 남겨두고 와야했습니다.
20여년 쓰던 키보드가 고장이 나더니 수리에 수리를 거듭 하다가 결국에는 재생 불능 상태에서 금번에 야마하 키보드 신시사이즈를 구입하여 왔습니다.
보내주신 후원금은 대부분 학교 스쿨버스를 구입하는데 쓰여졌으며 일부는 저희들이 한국에 체류하는동안 사용한 생활비와 교통비 등에 충당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있는 동안 타고다닐 차량을 내어주신 목사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춥고 배고픈 신학생 시절에 용인 총회 신학대학원 앞 같은 마을에서 지냈던 후배 목사님은 개척교회를 하시다가 2년전 암으로 주님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모님은 목사님의 뜻을 받들어 생계보호대상자나 결손가정 아이들과 소년소녀가장들을 돕는 행복플러스 센타를 운영하시면서 목사님 사후에도 그 사역을 계속하고 계셔서 도전을 받았으며, 그 아이들에게 도전을 하고 비전을 갖고 꿋꿋하게 살아갈 것을 전하였습니다.
아내 김선교사의 모교회에서 보고를 드리게 되어서 4년전에 꾼 꿈을 이루게 되어 감사하였습니다.
친구목사가 선교사로 있다가 귀국했다는 소식에 다음날 늦동이와 사모도 함께 한 걸음에 달려와 회후를 하면서 아껴논 농협 현금카드를 건네주어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선교지로 한주간 늦추게 되니 친구 목사님의 교회에서 함께 주일예배에서 선교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해에 후원교회가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1993년 우간다 선교사로 떠날때 선교위원회 위원장이셨던 장로님께서 저희 보고를 듣고서 저의 두 손을 꼭 잡으시면서 "김선교사님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밀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말씀에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저희들을 회복시켜주시는구나.   그날 그 장로님께서 저녁식사를 대접하셨다는 사실에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할 일은 많은데 장비는 열악하고 사역에 꼭 필요하여 갖고 오고싶은 물건은 많은데 무게가 제한되어있으니 아쉽기만 합니다.  주님 저희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갖고 들어올 수 있는 단기팀을 올해에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면서 고국을 떠나야했습니다.
거의 모든 옷은 친척들의 옷을 빌려 입고 다녔으며 바지 하나 잠바 하나 사서 입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재활용품 가게에서 배낭 두개 손가방 하나를 2,000원에 사서 교회 갈때마다 강대상까지 들고 올라가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다시 그 집에 가서 기모 바지를 하나 샀는데 가격이 3,000 원 하기에  돈을 건내 주자 주인 아줌마가 이렇게 묻습니다.   "혹시 목사님 아니십니까? "    "네 그렇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선교사입니다."   헌옷 가게에서 이렇게 기분좋게 쇼핑할 줄이야 예전에 미쳐 몰랐습니다.
그저 선교사에게 밥 한 끼라도 공궤하시려는 성도님들이 계셔서 감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고서 누가 우리를 이렇게 대접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사랑에 감격하여 다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온 조그마한 선물을 하나씩 직원들에게 풀때마다 감사와 기쁨이 검은 얼굴에 번지니 환하게 피어나는 흑진주같습니다.   아!   이곳이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드는  바로 그 천국이로구나.   선교지는 고생하는 곳이 아니라 천국생활을 누리는 곳이로구나.   주시는 것으로 줄 수 있어 대접받고 인사받고 인정받으니 이곳이 천국이로구나.   우리도 그곳에서는 내것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가서 잘 했다고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주님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써 올립니다.
늦은 밤 돌아올 막내 선교사 내외를 기다리다 잠이 드신 홀어머님은 우리가 들어오는 기척에 잠옷바람으로 뛰어나오셔서  손수 만드신 도토리 묵이며, 메밀묵을  차려주셨습니다.  이 맛은 다시 한 텀동안 입 안에서 지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인어른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자주 병문안을 갈 수 있어서 못다한 효도의 잔을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런지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이 주께로 왔으니 주께로 돌아갈찌라는 말씀을 믿고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남들이 대구에서 서울에서 안방까지 내어주면서 우리들이 편하게 머물도록 배려해주신 마음을 잊지 못하고 죄만 짓고 온듯 합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 맡길 수 밖에 없음을 절감하면서 비행기를 타러가는 선교사의 마음 편치는 않았으나 주님이 함께하시리라 믿으며 선교지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넷 해결하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나라, 다시 공무원들에게 굽신거려야 일이 되는 나라, 우간다에 두고간 한국 면허증을 단 3분만에 재발급해주는 나라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은 없지만 왠지 자꾸 비교가 되어서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아예 그런 생활을 접해보지 못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람사는 세상이 되고 보다 사람대접받으면서 살아갈 날이 더디 오더라도 참고 기다리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섬겨나가야겠습니다.
우간다에 도착하여 한주간에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한국에서도 하지않았던 감기와 말라리아를 우간다에 도착하자마자 통과하였습니다.
시차도 잘 적응되는듯합니다.
새학기를 위하여 교사들과 직원들이 분주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2014년 새학기에 새얼굴들이 어떻게 변하여 만나게 될 지 사뭇 궁금합니다.

늘 기도와 배려해주신 모든 선교의 동역자들과 교회와 지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기도의 줄을 잡으실때 이것만은 잊지말고 기도목록에 넣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 성령의 붙잡힘으로 기도와 말씀의 선교사가 되도록 힘쓰도록
2. 중고등학교 학교 부지 등기가 마무리되도록
3. 준하의 대학 진학은 주님의 뜻을 세워나가는 학교와 전공을 택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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